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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마음

Lifove 2018. 12. 30. 15:23

2016년 어버이날 부모님 생각하며 페이스북에 끄적였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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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안드로이드가 업데이트 되면서

폰의 날씨 앱이 새로 생겼다.

앱 제일 윗 칸에 지명을 넣으면,

해당 지역의 오늘 날씨, 내일 날씨,

10일 동안의 날씨를 모두 보여준다.


무심코, 서울 지역의 날씨를 찾아 보았다.

최저 10에서 최고 23도로 정말 이젠 봄이 왔나 보다.

본가의 날씨가 궁금해 마천동을 검색해 보았다.

같은 서울이라 최저/최고 기온이 같았다.

기온을 보고,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 거렸다.

“겨울이 다 지났구나, 이제 부모님 안 추우시겠다.”

그러다가, 10-23, 기온을 나타내는 숫자에 갑자기 울컥했다.


마천동은 그리고 그 옆 동네 거여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개발이 안된 지역 중 하나다.

수 년 전부터, 재개발이다, 뉴타운이다 말이 많았지만,

정권과 국회의원들이 몇 번씩 바뀌면서,

일의 진행이 더딘 것 같다.


부모님께서 섬기시는 교회는

서울에 몇 개 남지 않은 재래시장인

마천시장의 입구 근처에 있다.

시장 초입에서 200m 정도 들어간 후

시장 통 왼쪽 옆에 있다.


85년도에 오금동에 교회를 개척 하셨다.

개척 하실 때는,

어떤 교회가 새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사 후 남겨진 옛 예배당에서 시작을 하셨다.

그 후 십 수년 동안,

이전을 세 번이나 하며, 상가 건물만 전전했다.


처음으로 이전한 곳은,

어떤 상가의 3층 이었다.

교회 한 켠에 칸막이를 치고

사택을 마련하셨다.

보통 상가 건물의 직사각형 구조상,

부엌, 안방, 내 방, 누나 방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누나 들이 누나 방에 가려면,

부엌을 지나, 안방을 거쳐,

내 방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 상가는 완전 지하였다.

마찬가지로, 칸막이로 사택을 구분했는데,

역시나,

모든 방들이 나란히 연결된

기차식 구조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초반까지 그 곳에서 지냈다.

내가 태양 알러지가 있고, 피부가 많이 하얀 편인데,

햇볕이 전혀 안 들어오는 곳에서

초년기를 보내 그런게 아닐까 라며,

지레 짐작해 본다.


지하실로 이전 후,

얼마 되지 않아 1층에 닭 집이 들어왔다.

치킨을 튀겨서 파는 치킨 집이 아니라

생 닭을 유통하는 점포였다.

하필 지하실에서 유일하게 뚫려 있는 환기구 옆에

닭들이 담긴 노란 바구니를 쌓아 놓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얼었던 닭이 녹으면서 생긴

비린내 나는 물과 핏 물이 환기구 안쪽으로 고이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닭 집에 이야기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괜히 이웃 언짢게 하면 덕이 안된다 등등

부모님께서 이런 저런 논의를 하시더니,

결국은 아버지께서, 4m 정도 높이의 환기구에

사다리를 타고 오르시더니,

호수를 하나 넣으시고, 한 번 훅 빠셨다.

환기구에 고여 있는 닭 물이

호수를 타고 내려와 양동이에 쌓였다. 

그 때 이후로, 닭 물이 많이 고일 때마다

그런 식으로 대처 하셨다.

언젠가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꼴로,

닭 집 아주머니께서 예배를 드리러 오셨다.

오실 때 마다 제일 앞 자리에서,

연신 울고만 계셨던 게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사택을 교회와 분리했다.

그 때, 내가 벼룩시장에서 찾은 집으로 이사를 했었는데,

재밌게도, 이 집도 모든 방들이 나란히 붙어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방문들이 모두 거실 쪽으로 연결되어 있긴 했지만…

그 곳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 사이, 교회는 56번 버스 종점 근처의 상가로 또 이전을 했다.


마지막 이전은,

내가 포항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때였다.

보통 상가 주인들은,

학원이나 오피스를 선호하기에

교회에 세를 잘 내주지 않는다.

어김 없이 이전을 해야 하는 찰나,

전세로 갈지,

대출을 받아서 조금은 허름한 건물이라도 매입해서

이전을 하는게 나을지 고민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이사한 곳이,

마천동 시장 통 옆 작은 공장 건물이었다.

수십 평 정도 되는 작은 건물이었는데,

일 층은 본당,

2층에는, 부엌이 딸린 작은 교육관과

아버지 서재 그리고 사택을 두었다.

오래된 공장 건물이어서 그런지,

단열이 잘 안되는 곳이었다.

단열이 좀 약하더라도

난방만 잘되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단열이 안되다 보니, 난방을 하던 안하던,

결로 현상 때문에

매년 봄 도배를 다시 해야 했다.

그리고, 따뜻하게 난방을 하고 싶어도,

난방비로 엄두를 내지 못하셨다.

집에 도시가스가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천동 시장 통은,

좁은 골목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집들로만 둘러 쌓인 맹지들이 있다.

그래서 도시가스가 들어오려면,

남의 집 땅을 거쳐서 들어와야 하는데,

땅 주인의 허락이 없으면,

땅을 파헤쳐 도시가스 관을 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딱 우리 교회가 그 맹지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가스집에서

가스통을 시켜 사용해야 해서

난방비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겨울의 사택은

파카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이불 밖을 나오기가 참 쉽지 않았다.

밖이 아주 추울 때,

가족들과 대화시,

입김을 봐야 할 때도 있다.

아침에 식탁에서 따뜻한 국이라도 먹다가

뜨거워서 가족들이 전부 한 숨 들이내쉬면,

마치 오뎅 파는 포장마차에서 아침 먹는 기분이랄까...


집안에서 대화하는데 입김이라니…

생각해보면 웃기기도 하고,

나에게는 그냥 오래전 추억이지만,

자식들 다 출가 보낸 빈 집에서

부모님 두 분이 그렇게 입김을 내 뱉으며

또 지난 겨울을 보내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미어질 뿐…


어버이날 여기 멀리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돈 얼마에, 전화 한통이 전부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부모님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간다고,

부모님 계신 환경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제일 추운 날 자식이 집에라도 놀러가면,

우리 따뜻하라고,

보일러 좀 더 틀어 놓으실 테니

그날은 좀 덜 추우시지 않겠나...

봄에 도배하실 때,

내가 갈 수만 있다면,

힘들다며, 좀 쉬었다 하자고, 칭얼대긴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건,

이런 아쉬운 마음과 생각, 옛 기억들을

그저 글로 되새겨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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