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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으로 동성애에 대해 고민하기

Lifove 2015. 6. 16. 17:13

요즘, 동성애 관련해서, 퀴어축제 부터, 맞불 집회에 소수자 차별금지법 등 많은 글과 동영상들이 페북에 올라온다. 단체 행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러려니 하는데, 크리스천의 관점에서 요즘의 상황과 나의 생각을 좀 정리해보고,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몇 자 적어본다. 이 주제 관련해서 내가 보고 읽은 것은 그냥 페이스북에 올라온 다양한 의견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의 글 밖에 없어, 지식적으로 또 전문적으로 글을 쓰거나 할 능력은 안된다. 그냥 복잡한 문제를 붙들고 나름 생각과 의견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넋두리랄까...읽는 사람에 따라 내 논지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을테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텐데, 복잡한 상황을 이런 저런 관점에서 이해하고 생각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다. 그래서 이 글이 가능한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읽혔으면 좋겠고, 그래서 내가 미쳐 생각지 못한 이야기들도 듣고 싶다. (지금도 생각중이라 계속 글을 조금씩 수정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여러가지 이슈들과 문제들이 있다. 사명은 각자 각자이고, 누군가는 이 문제에 누군가는 저 문제에 행동하고 시간과 노력을 쏟게 마련이다. 교회내 목회자의 성추행과 부정 축재, 음란함과 성도들의 위선과 거짓 등등 우리가 율법을 적용해야 할 또 실정법에도 위배되는 교회내 문제들과, 또 가난하고, 약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고 대변해야 하는 사회정의와 관련된 문제들도 정말 많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산다는게 비웃음 거리가 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유독 크리스천들은 동성애와 같은 문제에는 특히 많은 목소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내고 있다. 왜 그런걸까?


동성애 주제에 대한 크리스천들의 다양한 의견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 동성애와 관련된 모든 것 결사 반대, (2) 동성애는 성경에 분명 어긋난다고 생각하지만, 소수자의 인권은 무시하면 안된다, (3) 성경적으로도 동성애는 죄가 아니다 (4) 상관없다 (실정법상 동성애는 죄가 아니므로...) 등이 있을 수 있겠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1) 혹은 (2)의 입장을 가지고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2)의 사람들도 (1)의 행동을 하는 경우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2)를 두 부류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다. "동성애는 성경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만, 소수자의 인권은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또 "동성애는 성경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만, 소수자의 인권은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시인하는 사람을 크리스천이라고 하고, 또 창조의 바운더리를 넘는 것을 성서가 말하는 죄라고 한다면, (3)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참된 크리스천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4)는 인본주의 성향이 짙거나 혹은 결국 하나님이 심판하실 텐데 뭔 상관이냐라고 하는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동성애 문제가 이렇게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된 이유는, 아무래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을 들이대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크리스천들이 율법의 잣대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들이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크리스천들이 누구인가? 율법의 증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우리 보러 그리스도의 사람인 크리스천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먼저 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이지, 율법이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인지 알려줄 때 의미가 있고, 그 때 비로서 우리 삶을 변화 시키는 놀라운 힘이 된다. 예수님이나 바울 선생이나, 욕을 하고 분을 낸 대상은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동했던 바리새인이나 초대 교회 신자들이었다.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은, 여러 신을 섬기는 로마 사람들 앞에서, 이 우상을 섬기는 악한 사람들! 이러면서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아테네 사람들은 종교심이 많다고 이야기 하며, 그 곳에 있었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을 보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증거했다. 또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회개하기 원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를 들은 사람 중 일부가 바울이 전한 메시지를 믿었고, 결국 이방인 크리스천이 된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는 것과, 죄의 불이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율법을 들이대야 할 대상은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나 자신과 크리스천들이다. 예수님께서 내 뱉으신 독사의 새끼란 말을 누구에게 했는지 찾아보라. 예수님이 바리새인 처럼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 한 대상이 누구인지 찾아보라. 바울 선생의 목회서신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라는 훈계를 누구에게 했는지 찾아보라. 신약에서 "이방"이란 단어가 나오는 구절들을 찾아보라.


최근에 페북에서 읽은 기사 중에, 꽃집 기사와 같은 경우는, 해석을 잘 해야 한다. 동성결혼이 합법인 나라에서, 신앙적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동성 결혼하는 손님의 예식 꽃 장식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소송이 걸린 사건이다. 차별금지법 같은게 통과하면 소송과 같은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꽃집 기사의 의미를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종교적인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법을 반대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 것을 우려한다. 왜냐하면, 이런 해석은 신앙의 순수성이 목적이 아닌, 단순히 불이익 당할 것을 방어하기 위한 정치적인 단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을 지지하고 반대하는 정치적인 영향력의 크기에 따라, 해당 법은 통과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그 법이 통과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달라지는 건,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가거나, 혹은 장사를 영영 못하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자녀들을 말씀으로 교육하기가 정말 힘들어질 수 있다. 정말 극단적인 상황에는, 교회가 문을 닫고 핍박을 당할 일도 벌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편으로 크리스천들은 이런 불이익을 당하는 것에 익숙하고 익숙해야 할 사람들이 아니던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이 아니던가? 혹시라도 법이 통과 되어서 크리스천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핍박받게 된다면, 그건 우리의 복인 것이다.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 세상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좇아 살아가는 힘든 싸움을 해야 하며, 우리의 자녀들이 진리 속에 바로 설 수 있도록, 교회가 말씀 교육을 사명감을 가지고 시켜야 한다. 어차피 세상은 죄가 관영한 곳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소견대로 행동한다. 우리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어쩌면, 심판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 하지 못한 부분이어야 한다.


크리스천들이 일으키는 다양한 동성애 반대 운동들이, 앞으로 닥칠 크리스천들의 경제적, 사회적, 혹은 종교적인 불이익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면, 그런 운동들은 정치적인 움직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순수한 신앙 열정에, 죄악이 관영한 이 시대를 안타까워하며, 동성애 문제를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다. 나는 이 분들의 순수한 신앙 열정을 존중한다. 나도 그 분들을 도와 그렇게 행동하고 싶을 때가 있다. 숨은 곳에서, 죄악된 세상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며 안타까워 하는 기도 자리에는 나도 함께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우리가 하는 운동과 행동이, 사회를 향해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지, 아니면, 율법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인지, 먼저 지혜롭게 판단/분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온 나의 친구들 중,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말씀 앞에 치열하게 씨름하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교회는 이들의 외로운 싸움에 대해서 함께 고민 할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던가? 자신의 이러한 성향을 말씀에 비추어보며 죄스러워 하기도, 또 결혼도 하지 못하고, 평생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가야 할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 크리스천들을 위해, 공동체는 어떤 배려를 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종교국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 정치가나 입법가들 정책 입안자들이 법과 정책을 만들 때, 성경에 나온 율법의 기준 이전에 보편적인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법을 재정해야 한다. 어떤 율법들은, 그런 보편적인 정의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와 아픈 사람 같은 약자들을 돕는 법과 정책들이다. 하지만, 어떤 율법들은 보편적인 정의로 적용하기 힘든 것들도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소수자 차별금지법과 같은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정의 사이에서 서로 상충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복잡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의 사람들 중, 이 차별금지법을 찬성을 하는 사람들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입장을 가지든 그 것이 율법의 기준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사랑의 기준에 의해 갖게 된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로마 시민인 바울이 어떻게 우상 많은 로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의 삶을 살았는지,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는지, 그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잘 전할 수 있을까? 동성애 문제도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꽃집 주인이,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동성애자에게 꽃 장식을 만들어 주지 않은 것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것인지, 율법의 잣대로 동성애자를 판단 한건지, 아니면 자기 의를 드러낸 것인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알 수가 없다. 꽃집 주인의 행동은 결과적으로는 차별금지법이 이야기 하는 차별을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꽃집 주인이 꽃을 팔아도 괜찮은 걸까? 누군가는 쉽게 답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뭐라고 답을 할 수 있을지 아직 고민 중이다. 바울이 텐트메이커 였는데, 로마 사람들에게 신전 행사에 사용할 텐트를 팔았을까?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했는데, 그러면, 법을 준수하는게 맞는 걸까? 함께 고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서두에도 이야기 했지만, 크리스천들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여러가지 이슈들과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에 유독 집착을 하는 이유는, 율법의 기준과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라는 두 기준이 충돌하기 때문에, 또 동성결혼과 차별금지법이 허용될시 받게 될 여러가지 불이익 때문에 발생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신약 성서에서 예수님의 삶과, 바울 선생의 모습을 통해 내가 발견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이나 우리가 감내해야 할 불이익 보다는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 때, 율법의 기준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변화된 삶이 되었음을 확인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림 출처 (http://cartoon.godpeople.com/m/attach_files/dorian2/7433/hih_1.GIF)


이 그림은 수년 전부터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페북에 공유되면서,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림이다. 동성애 이슈로,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의견들이 난무하는 상황 가운데, 이 그림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본질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율법의 증인이 아닌 참된 크리스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림 실력이 있었다면, 한 컷의 그림을 더 넣고 싶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어떻게 삶이 변화 됐는지를 보여주는...놀라운 은혜('amazing' grace)가 축복이 되는 그 순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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