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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에게

Lifove 2018.12.30 16:07

2013년 아내 생일에 페이스북에 끄적였던 아내를 위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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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가 살던 집은

단층짜리 교회건물 강단 뒤에 칸막이를 치고 만든 교회 사택이었다.


사택 가운데 거실 같은 마루가 있었고, 마루 양 옆으로 방이 두 개,

강단 뒤 칸막이와 마루 사이에는 1미터 남짓의 작은 통로가 있었다.

부엌과 화장실을 잇는 작은 통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택 마루가 칸막이를 하기 전 교회의 강단이었고,

방 두개는 강단과 연결된 목양실이나 사무실이 아니었나 싶다.


전 천호서부교회였던 지금의 혜림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시던 아버지께서,

어떤 교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남겨진 예배당에,

칸막이 하나로 사택과 본당을 나누어 85년도에 개척을 시작하신 곳이다.


딱 무슨 마을 회관처럼 생겨서,

동네에 무슨 일 있으면,

동네사람들 모여서 반상회 장소로도 쓰이기도 했었던 것 같고,

낮에는 시장동네 형들이랑 놀다가 잠시 더위를 식히던 장소로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단층 짜리 오래된 건물이라,

비만 오면,

천장 여러 군데에서 빗방울이 많이 떨어졌었는데,

마루 여기 저기에,

대야나, 1.5 리터 짜리 페트 병을 반으로 잘라 만든 통에

빗물을 받곤 했었다.


마루에 누워,

듬성 듬성 놓인 대야와 통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들으면서,

라디오를 틀어 놓고 밍기적 거렸던 시간들은,

지금 돌아보면, 가슴 뭉클했던 추억의 시간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금도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리는 어둑 어둑한 날,

음악을 들으면서 뒹굴 거리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행복한 기억들은, 늘 항상 소리와 함께 하는가 보다.


빗 소리 기억 이 외에,

소리와 함께 하는 또 다른 행복의 기억이 있다.


사택 방은 두 개라, 사실 내 방은 따로 없었다.

방 하나는 당연히 부모님께서 쓰시고,

나머지 방 하나는 누나 둘이 항상 같이 썼었다.


낮에야, 학교 갔다오면, 마루에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면 되지만,

밤이 되면, 텅빈 마루에서 혼자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옆에서 같이 잠을 잘 수 밖에 없었다.


낮에는 늘 항상 시장 동네 형들이랑 달리며 놀았기에,

9시만 되면, 정신없이 잠들었었다.

그러다가, 잠을 깰 때가 많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이불 속에 주고 받으시는 대화들 때문이었다.


"Z 집사님네는 이 번에 어떤 어떤 일들이 있었다는 군요."

"오 정말 잘 됐네요..."

"이 번에 새로 나온 Y 성도님은 이러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고 그래요."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네요...

한 번 만나서 위로해주고 이야기를 해봐야 겠어요."

"청년부에 X는 교제하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냥 모른척 하는게 낫겠죠?"


주로 하시는 대화들은 성도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 또는 기쁜 마음들,

친척들에 대한 염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투기도 하셨고,

철 없던 나는 그 대화들을 들으면서 잠이 깨기도,

또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다시 잠이 들기도 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도 부모님의 대화 소리들은,

나에게 평안과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드문 드문 대화소리에 깨면서,

엄마 아빠가 옆에 계시는 구나 하면서,

다시 평안하게 스르르 잠이 들기도 하고,

무서운 꿈을 꾸면서 끙끙대다 일어나도

엄마 아빠가 옆에 있는 소리 듣고, 다시 안심하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하루 하루를 돌아보는 부모님의 이불 속 대화 소리들도,

어릴 적 나의 삶, 소소한 행복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덧 나도 30대 중반이 되었고,

결혼도 하고,

이제는 매일 밤 이부자리에서 아내와 대화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행복의 소리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침대 위에서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잠이 들기 전 이 시간이 참 행복한 시간이라며 줄 곧 이야기 하곤 한다.


사실, 대화도 대화지만,

나에게는 막내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아내가 귀찮아 할 정도로 장난을 정말 많이 친다.

예를 들어, 누워있는 아내 간지럽히거나,

막 잠들려고 할 때, 코를 막아서, 잠을 깨게 하거나 등등...


신혼 때의 아내는 당하기만 하거나 애써 무시 했었는데,

언제 부터인지, 필살기를 개발해서 장난치는 나를 공격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아내의 필살기는,

발꼬락으로 내 허벅지 꼬집는거...

아내가 꼬집는 시늉만 해도 넘 무서워서 이불 속에서 보이지 않는 방어를 하느라 애를 먹는다.


한 번은 제대로 꼬집힘을 당했는데,

너무 서럽게 아파서 심각하게 화를 냈더니, 아내가 막 웃기만 한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루면,

둘 다 힘이 빠져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잠들곤 했다.


아내와 함께 청년부 간사를 하게 되면서는,

부쩍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

"누구 누구는 요즘 안 본지 꽤 오래 된 것 같아"

"어느 학교 아이들은 안정적으로 꾸준히 잘 나오는데,

어떤 학교 아이들은 듬성 듬성 거려."

"이번 학기는 셀을 너무 잘게 나누어서 리더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A 하고 B 하고 사귀면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아니야 B는 C하고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내가 봤을 때는 D는 E를 좋아하는 것 같아."

"F가 요즘 잘 안보이는데, 혹시 G하고 H하고 사귀어서 그런게 아닐까?."


어떨 때는 박사님인 아내와 아카데믹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많다.

"우리 분야에서는 모델을 만들때, PCA를 본래 목적과 다르게,

실행 성능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던데, 당신은 PCA 뭐할 때 써?"

"수학적으로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될까?"

"하둡을 이용해서 네트워크를 트래픽 로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것이 요즘 뜨고 있는 빅데이터하고 연관이 많이 되어 있지."

"데이터 마이닝하고는 그럼 어떤식으로 다른거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대화들이 행복한 소리로 남았지만,

지금은 아내와 함께 행복한 소리의 기억들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소소한 행복들은 돌고 도는게 아닌가 싶다.


공부하는 거 마치고, 10년 쯤 뒤 어느날, 4월 3일에

나는 이 시간들과 소리들을 추억하며 또 글을 쓰지 않을까?

그리고 그 때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고 잠이 깨는 아이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 소리들을 행복한 소리의 추억으로 물려주고 싶다.


4월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태어나게 해주셔서,

나와 함께 행복의 소리들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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